본문 바로가기

취재파일/경찰청 언저리 생각

경찰의 집회 금지, 과연 적법했나







*헌법과 법률에서는....


집회 시위는 주지하다시피 민주 사회에서 시민이 자기 의견을 표현하기 위한 한 수단이다. 헌법 21조 1항에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언론 출판의 자유'와 함께 규정해 보장하고 있다. 2항에서는 '그 자유는 누가 허가하는 게 아니다'라고 정리했다.

 


헌법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건, 비상 계엄이 선포시 그것도 법률이 정하는 한도 내에서다. 헌법 77조다.

 


헌법 제77조

③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런 헌법의 천명과는 별도로, 집회 시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줄여서 집시법이다.

 

먼저 집회 및 시위 신고, 집시법 6조에선 시작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집시법 8조는, 경찰이 집회 및 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 통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집시법의 목적 중 하나는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해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시법 8조에 따라, 경찰이 금지 통고할 수 있는 집회는 우선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집회다. 이럴 땐 선착순이다.(네이버 웹툰 '송곳'에도 이와 관련한 에피스드가 나오는데.. 특정 기업을 규탄하는 집회를 그 본사 앞에서 열기 위해 밤샘 대기하다 집회 신고를 했다거나 미리 유령단체가 집회 신고를 선점했다거나 하는 일이 수년 전만 해도 비일비재했다. 이전보단 줄었을 수도 있으나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 다음엔 집회 시위로 인해 재산, 시설에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사생활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을 때, 학습권을 뚜렷이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 군 시설이나 군 작전 수행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에,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장소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 한해 경찰은 집회나 시위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다.



집시법 8조 

③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그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집회나 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다. 이 경우 집회나 시위의 금지 통고에 대하여는 제1항을 준용한다.  <개정 2007.12.21.>

1. 제6조제1항의 신고서에 적힌 장소(이하 이 항에서 "신고장소"라 한다)가 다른 사람의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로서 집회나 시위로 재산 또는 시설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사생활의 평온(平穩)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2. 신고장소가 「초·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의 주변 지역으로서 집회 또는 시위로 학습권을 뚜렷이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3. 신고장소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제2조제2호에 따른 군사시설의 주변 지역으로서 집회 또는 시위로 시설이나 군 작전의 수행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심각한', '뚜렷하게', '뚜렷이'다. 


주거지역, 학교 주변, 군 시설 주변에다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 보호 요청을 한다고 해서 모든 집회 시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각하거나 뚜렷하게 피해를 주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아예 집회, 시위가 금지된 장소도 있다. 집시법 11조에 나와 있는데,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 공관(행진시 예외), 국내 주재 외국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 숙소(대상이 아닐 때나 대규모 집회 확산 우려 없을 때, 휴일에 개최할 때) 주변 100미터 이내에선 집회 시위 금지다.


교통 소통을 위해 제한할 수도 있다. 집시법 제12조인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시위에 대해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6.10 집회 신고 61개, 모두 금지 통고... 이유는





이렇게 장황하게 헌법과 집시법의 관련 조항을 늘어놓은 이유는, 6월 항쟁 27주년을 맞아 '6.10 청와대 만인대회'를 개최하겠다며 주최측이 신고한 61개 집회를 경찰이 죄다 금지 통고했기 때문이다. 


만인대회 주최 측이 밝힌 집회 신고 장소는 아래와 같고, 시간은 19시부터였다.



번호도로번지건물
1삼청로4란스튜디오
2삼청로6서울셀렉션
3삼청로8갤러리현대 본관
4삼청로10법련사
5삼청로12꼬세르
6삼청로14갤러리현대 신관
7삼청로18금호미술관
8삼청로22예나르(영접빌딩)
9삼청로24COREME
10삼청로1광화문 누각 앞
11삼청로1광화문 누각~동십자각
12삼청로1경복궁 주차장 입구 남쪽
13삼청로1경복궁 주차장 입구 북쪽
14세종로1-55국립민속박물관 입구
15세종로76-4광화문 시민열린마당 앞
16세종로77-2광화문 누각~고궁박물관입구 1
17효자로3고도빌딩
18효자로9통의파출소
19효자로15코오롱빌딩
20효자로17
21효자로25진화랑
22효자로33통의동 보안여관
23효자로39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24자하문로6던킨도너츠
25자하문로10대관령명품한우
26자하문로12버스정류장
27자하문로18교촌치킨
28자하문로18-1마산아구찜
29자하문로22화암빌딩
30자하문로24섬마을횟집
31자하문로26-1경복궁박광일참치
32자하문로30통의동 우체국
33자하문로32북촌손만두
34자하문로36유양석치과
35자하문로40-1창성갈비
36자하문로42 
37자하문로44 
38자하문로46 
39자하문로48 
40자하문로50-1다슬기해장국
41자하문로54 
42자하문로60세븐일레븐
43자하문로62파리바게뜨
44자하문로66-1웰빙 장충왕족발
45자하문로70 
46자하문로74-1진일정 원조떡갈비
47자하문로82경복궁 아트홀
48자하문로86-1 
49자하문로83버스정류장
50자하문로69옥인교회
51자하문로61신한은행
52자하문로92청운효자동주민센터
53자하문로 26길15가진화랑
54자하문로 28길8새사람선교회
55자하문로 28길16궁정교회
56자하문로 30길24버스정류장
57세종로2-4국립고궁박물관 옆
58세종로1-85고궁박물관 입구 옆
59창성동116-3영추문 옆
60적선동106-1우리은행 옆 인도
61적선동106경복궁 옆 3번 출구



경찰이 집회 금지를 통고하며 이유로 내세운 건 집시법 8조와 12조다. 주거 지역에, 학교 시설 주변인데다 교통 소통 방해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금지한다는 것이다. 그 지역 거주자나 시설 관리자가 요청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주최 측은, 신고 장소가 평소에도 집회나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곳인데 청와대 근처라는 이유로 경찰이 금지 통고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내세운 금지 이유에 해당하지 않고 청와대 주변이라고 해도 300미터 이상 떨어져 있기에 집회 금지 장소에는 해당하지 않는데 금지했다는 것이다. 또 전날 정오쯤 통고를 해옴으로써 다시 집회 신고를 할 수 있는 여유도 주지 않았다며 집회를 원천 봉쇄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주최 측은 예정했던 집회를 강행했고 경찰은 불법 집회라면서 집회 참가자 69명을 연행했다.


왜 최근 집회 시위 참가자들은 청와대로만 가려고 하냐, 경찰 입장에서는 이를 막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집회를 어디서 열고 어디로 행진하는가는 전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이 정할 문제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최근 상황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이를 집회와 시위를 통해 표현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는 현실 인식과 판단의 문제다. 그런 인식과 판단이 적절했는가는 집회 금지 논란과는 무관한 것 같다.



*경찰의 집회 금지, 적법한가


이번 집회에 대한 경찰의 금지 통고가 적법했는가? 앞서 적었듯 '6.10 만인대회'가 '심각하게', '뚜렷이' 사생활의 평온이나 학습권 침해를 불러올 우려가 있었나를 따져봐야 한다. 


비가 온 데다 평일이라 그랬는지 참가자는 여기저기 합쳐도 2백여 명 수준이었다. 경찰은 6천 4백 명 배치됐다. 이 정도면 주말 촛불집회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친다. 또 평소 경찰 정보력으로 볼 때 참가인원이 어느 정도일지도 미리 파악했을테다. 혹시 경찰의 과잉 대응이, 경찰이 집회 금지 사유로 내세운 현상들을 (있었다면) 불러오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더 나아가서는, 헌법 규정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경찰이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집회를 허가 또는 금지하고 있는데 이게 타당한지다. (헌법에 집회 허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못박은 건 1987년 헌법 개정 때 일이다. 6월 항쟁 27주년 즈음해 이런 논란이 불거진 게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경찰의 판단을 그대로 신뢰할 수 있다고 해도 이대로 놔두는 건 위헌 내지는 헌법 불합치 수준이라는 게 시민단체들의 판단이다. 하물며, 경찰에 대한 신뢰는 여러 면에서 볼 때 그렇게 두텁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각 경찰서마다 서장이 자문할 수 있는 집회시위 자문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으나, 운영은 말 그대로 유명무실이다.(자문위를 통해 집회 시위 금지한 사례는 있으나 금지를 허용으로 바꾼 사례는 보지 못했다. 그런 사례 있으면 알려주셨으면.)


집시법의 목적은 1조에 나와 있듯 "적법한 집회(集會) 및 시위(示威)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경찰 판단의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공공의 안녕질서 쪽에 가 있는 것 같은데 계속 그러려면 집시법 1조도 개정하고, 헌법까지도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묘안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