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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경찰청 언저리 생각

'염전 노예'는 다시 발견됐을 뿐이다

기사 보기 => '염전 노예' 더 있었다...사회적 약자 표적






-2006년을 규정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노예'였다. 

 

SBS의 <긴급출동 SOS 24>에선 2006년 잇따라 '현대판 노예' 사건을 고발했다. 5월 2일엔 '현대판 노예-할아버지의 짓밟힌 50년'이란 제목으로 무려 50년을 노예처럼 살아온 당시 73살 이흥규 할아버지의 사연이 방송됐다. 가해자는 생계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 노인복지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당시 경찰은 폭행, 학대 혐의는 입증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독거노인에게 보조금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점검했다.

 

6월 26일엔 '섬에 갇힌 사람들', 섬에 갇힌 채 10년째 노예 같은 생활을 해온 '노예 청년'이 방송됐다.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던 33살 이향균씨는 인신매매로 섬에 끌려온 뒤 염전에서 주로 일했는데 마을 이장 등에게 임금과 장애수당까지 착취당했다. 10년 동안 모았던 비상금이 고작 2만 2천원이었고 많은 시민들이 이 방송을 보고 분노했다. '노예 할아버지' 뒤의 방송이라 '노예 청년'이라고 했는데 염전이 더 부각됐다면 '염전 노예'가 됐을 수도 있다. 

 

7월 4일엔 '노예 며느리-지독한 시집살이' 편이 방송됐다. 지체장애인인 이정혜씨는 25살 때 역시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남편과 결혼해 시어머니에게 폭행과 학대를 당하며 10년 간 살아왔다. 온몸은 상처투성이, 새벽 4시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살인적인 노동에 종사해야 했고 세탁기가 있는데도 시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아 손빨래만 해야 했다. 이씨는 친정 식구들에 의해 10년 만에 구출됐다.

 

-8년이 지나... 2014년 2월과 3월 다시 '노예'로 떠들썩하다. 이번엔 '염전 노예'다. 

 

2월 초엔 연락이 끊겼던 시각장애인 아들이 14년 만에 집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왔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전남의 외딴 섬에 찾아가 염전에서 1년 넘게 강제 노역을 해온 그를 구출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실종 신고된 지적 장애인 1명은 5년 넘게 강제 노역을 해왔고 경찰이 함께 구출했다. 

 

이 사건이 보도된 뒤 대통령까지 언급하는 등 파문이 커지자, 경찰은 관계기관과 함께 2주 동안 일제 수색을 벌였다. 수색 대상지는 염전과 김 양식장, 축사, 수용시설 등이었다. 


수색 결과, 실종.가출자 102명, 무연고자 27명, 수배자 88명, 불법체류자 7명이 발견됐다. 염전 등에 고용된 사람 중 임금 체불을 당한 이는 107명, 체불된 임금은 모두 합쳐 12억 2천만 원이었다. 이중에 장애인은 49명이었다.

 

임금 체불 107명 중 92명은 염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장애인은 24명이다. 

 

이번 수색에서 드러난 또다른 '염전 노예'는 몇 명일까. 


정확히 몇 명이라고 할 수 없다. 발견된 실종.가출자나 무연고자를 합치면 129명, 이와 중복되기도 하지만 별도로 분류된 임금 체불 피해자는 107명이다. 실종, 가출자나 무연고자 중에는 장애인 시설 등에서 발견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임금 체불 피해자를 기준으로 보면 최대 107명인 셈이다.

 

경찰은 '염전 노예' 사건처럼 실종자가 강제로 염전 등에 팔려가 감금당하면서 착취당한 사례는 많지 않다고만 설명했다. 이번 수색 결과만 놓고 보면 경찰 설명대로인 것 같다. 그러면 2월 초의 '염전 노예' 사건은 정말 드문 사례 하나가 우연히 불거진 것일까. 





2006년 6월 26일 방송된 '노예 청년'이 있던 곳도 바로 전남 신안군의 한 섬이었다. 이런 '섬 노예' 사건은, 가만히 돌아보면 끊이지 않았다. 

 

신안군청이 이와 관련해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냈다. 아래는 그중 일부다.

 

"...신안군은 유인도 72개, 무인도 932개가 있으며, 서울시의 22배에 달하는 면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넓은 신안군에 아직 경찰서가 없습니다. 고작 15개 섬 파출소와 21개 치안센터가 전부이며, 경찰인력은 군전체에 총 95명 뿐입니다..."


"...그동안 문화적,사회적으로 소외된 섬지역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다가 문제가 발생하니 일부 네티즌들이 모든 것을 행정기관인 신안군에서 잘못한 것처럼 탓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2006년에도 이미 10년째 노예 같은 생활을 해왔다는 사례가 나왔으니 수십 년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가끔씩 불거질 때마다 반짝 관심을 받다 흐지부지되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신안군에서 잘못한 건 아니지만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건 잘못이다.


물론 이 문제는 염전의 폐쇄적, 고립된 환경, 단순 업무에 저임금 구조, 이를 극복하기 힘든 소금 산업의 어려움 등에다, 장애인 복지와 보호, 관리 문제, 불법 직업 소개소 문제 등이 다 맞물려 있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난제다. 

 

-경찰은 이번 전남 신안, 영광, 무안, 해남, 보성, 완도 등 998개 염전을 점검했다고 하는데 2주 동안 예고된 수색과 점검을 통해 발견한 저 사례만으로 '염전 노예'가 몇 명 더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많지 않다"고 단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감금, 폭행, 임금체불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업주 1명이 구속됐고 18명이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이중에 몇 명은 추가로 구속될 것 같다. 경찰은 이외에도 업주 십여 명을 조사하고 있는데 이중에서도 다수가 입건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