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파일/경찰청 언저리 생각

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이 '비정상'일까




-'비정상의 정상화', 이 구호를 듣고 처음 떠오른 건 장애인이었다. 정확히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어떤 시선이다.


장애인에 대해 "정상이 아니"라고 하거나 "장애인과 정상인"이라고 상대적인 개념인 것처럼 말하는 것,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을 뿐인데 이를 두고 정상이 아니라고 하는 건 잘못된 표현이라는 의미다. 정상, 비정상이라는 말 자체에 정상은 옳고 또 좋은 것, 비정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란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래서 장애인의 상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따라서 어떤 게 비정상인지를 규정하는 게 될테다. 또 그런 규정부터가 시민의 지지를 받아야 정책 자체도 탄력을 받을 것 같다.  

 

-경찰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크게 두 가지를 추진하고 있다. 교통질서 등 기초질서 미준수 관행 개선, 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 해소다. 집회와 관련해 세부적으로는  '집회현장의 소음으로 인한 생활불편 개선', '영유아시설 주변지역 집회시위 제한'이다.

 

'교통질서 등 기초질서 미준수'를 비정상이라 규정하는 데는 시비할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를 정상화하는 건 필요하다. 잘못된 교통신호체계가 있다면 개선하고 과속, 음주운전 등 주요 위반행위 처벌 강화, 얌체운전 등 단속 강화 같은 조치들, 대환영이다.

 

-그런데 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은 좀 다르다. 이것도 비정상일까.

 

경찰이 꼽은 첫번째 불편은 집회 소음으로 인한 피해, 두번째는 집회(소음 등)으로 인한 학습권 침해다. 그렇기에 이를 먼저 '정상화'하기 위해 경찰이 추진 하는 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 개정이다.

 

집회 소음 허용 기준은 집시법 시행령에 규정돼 있다. 주거와 학교지역은 주간에 65데시벨, 야간에 60이 상한선, 그외 기타 지역은 주간 80 야간 75다. 소음기준이 높은 주거, 학교 지역에 종합병원과 공공도서관까지 넣겠다는 게 첫째 개정 내용, 기타 지역의 소음 기준은 5데시벨씩 낮추겠다는 게 둘째다. 셋째는 현재 5분씩 2회를 측정해 평균을 내도록 하고 있는 소음 측정을 1회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집회로 인한 학습권 침해와 관련해 이미 집시법 8조에서는 집회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지역으로 학교 주변을 규정해 놓고 있다. 지난해 1월 발의돼 현재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은 여기에 유치원과 어린이집 주변까지 추가하는 내용이다. 경찰이 추진하는 내용과 같다.

 

집시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가 필요하지만, 시행령은 경찰이 입법예고한 뒤 규제 심사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를 통과되면 된다. 해당 집시법 시행령은 지난해 12월 26일 이미 경찰청이 입법예고했다. 집회 소음 기준 강화는 이르면 3월부터, 집시법 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에서라도 통과된다면 하반기나 내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이 설명하는 추진 근거는, 먼저 집회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다. 소음 민원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어 소음 기준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것. 실제로 경찰이 집계한, 소음 민원이 제기된 집회 건수는 2009년엔 327건이었는데 2012년 523건으로 크게 늘었고 2013년엔 698건에 이르렀다. 경찰은 각 집회마다 수십 건씩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실제 집회 소음으로 인한 민원은 10배, 20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기타 지역의 소음 상한선을 5데시벨 내린다는 것이다.

 

또 종합병원과 공공도서관 적용기준을 강화한 데 대해서는, "특별히 정숙이 요구되는 장소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외국에서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미국 루지애나 주에서는 병원, 교회 등에서 55데시벨 초과하면 처벌하고, 독일, 일본 등에서도 주간 57데시벨이 상한선이거나 20시 이후엔 확성기 사용을 금지한다고 한다.)

 

영유아 시설도 집회 제한 지역에 포함시키는 집시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합쳐서 4만 8천 개로 초중고교 1만 천 3백 개에 비해 4배 이상 많은데도(2011년 기준) 학습권 보호에서는 취약하다는 것-시설주가 요청하면 주변에서의 집회 신고를 금지,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을 경찰은 논거로 들었다.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찰의 이런 움직임을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집회 현장에서도 경찰이 집시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소음 민원을 빌미로 경찰이 집회 현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더 넓히려는 시도로 본다는 것이다. 


자세히 듣기 위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인 박주민 변호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따로 정리하는 것보단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게 나을 듯하다.  


------------

Q. 경찰이 '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 해소' 관련해 추진하는 안들에 대해 어떻게 보나?


A. 현재 우리나라 집회는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집회가 전체 집회 중에 0.5% 내외로 상당히 평화적인 집회로 이름나 있. 그럼에도 오히려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이 지나치게 많다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번에 경찰이 추진하고 있는 시행령 개정이라든지 집시법 개정 같은 경우엔 이러한 제한을 더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추세라든지 또는 기본권 보호라는 그런 대원칙에 상당히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Q. 경찰은 집회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갈수록 증가하는 등 시민 불편이 크기 때문에 개정이 불가피하다는데?


A. 집회의 자유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르면 생명권 다음으로 소중한 기본권이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기본권이다. 따라서 그 기본권의 행사에 따른 불편에 대해서는 수인(受忍)해야 된다 라고 판시를 하고 있다. 최근에 (집회 소음) 민원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많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라든지 또는 기본권의 의미 그리고 전체 공동체의 나아가야 될 방향을 고려했을 때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기보다는 보다 조화롭게 행사할 수 있는 그런 방법들을 고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Q. 시민사회계에서는 그동안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보인 행태를 볼 때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도 얘기하던데?


A. 맞다. 사실 우리나라 집시법의 규정들이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집회가 금지되는 폭이 굉장히 넓었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경찰로서는 집회를 예전만큼 통제하려면 새로운 수단들이 필요한 상황이고 그 수단으로써 소음 통제라든지 장소 통제 이런 것들을 지금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씀드리면 집회를 엄격하게 관리 통제하겠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고민한 새로운 방안들이고 그것은 지금의 어떤 추세, 즉 대법원이라든지 헌법재판소가 집회의 자유를 보다 넓게 보장하려고 하는 이런 추세와도 상충되는 것으로 보인다.

 

Q. 집회 자유 관련해 어떤 판례가 있었나?


A. 요즘에 대법원이 잇따라 어떤 판결을 내고 있냐면, 금지통고된 집회라도 평화적으로 진행이 되면 해산이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미신고 집회도 평화롭게만 진행이 되면 해산해서는 안 된다, 신고 범위를 일탈한 집회라 하더라도 금지 또는 해산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거기다 집회가 중복됐다는 이유로 금지 통고들을 경찰들이 기계적으로 많이 했고, 그에 따라서 대기업들이 사전에 집회신고하는 방법으로 집회를 못 열게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지금 법원들이 특별한 어떤 요건들을 더 추가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만큼 경찰들이 이 집시법을 가지고 집회를 못하게 하는 가능성, 그런 정도가 지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이제 경찰로서는 집회를 예전만큼 엄격하게 통제하려면 새로운 수단이 필요한 건데 그 새로운 수단으로서 생각하고 있는게 이제 民 대 民의 대결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소음 민원, 학습권 침해 이런 것들을 가지고 와서 저쪽 다른 민간 쪽에서 요구한다 이런 논리로써 오히려 집회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근데 이건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집회의 자유라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권리인데 이걸 민 대 민의 대결을 끌고 와서 다른 차원으로 떨어뜨려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은 국민 전체가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의 정도가 약해지는 거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집회를 안한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자기가 집회를 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런데 이런 걸 생각 못하고 단기적인 시각에서 지금 당장 시끄러우니까 내가 나중에 행사할 수도 있는 권리, 그것 자체를 훼손시키겠다 라는 접근 방법이기 때문에 여기에 이제 섣불리 국민들이 찬성을 해주시면 안 된다. 찬성을 해준다면 오히려 집회를 성가시게 생각하는 정치 권력, 기득권 세력, 또는 뭐 경제 권력들 이쪽의 입맛에 맞게 해주는 거다.

 


-----------

-2004년부터 2012년까지 경찰이 집회 소음을 3만 5천 753건 측정했는데 이 중에 사법처리한 건 43명(0.12%)에 불과하다. 경찰이 추진하는 대로 집회 소음 기준이 강화되면 사법처리 건수는 더 늘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따라 이전보다 집회 소음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벌이는 집회, 시위에서 불편을 겪는 사람이 없을 순 없다. 하다못해 정부 청사 앞에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 때문에 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불편할 것이고 집회 소음 때문에 업무효율이 떨어진다고 호소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집회"라는 건 일종의 형용모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이 과연 비정상일까. 이를 비정상이라고 하는 건 정상인가. 이제까지 경찰이 내놓은 설명만으로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 입법 과정에서 혹은 그 이후라도 더 공감할 수 있는 정책 설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