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일기/북적북적

북적북적 56/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북적북적 56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듣기



##SBS 보도국 팟캐스트 공식 책 낭독 프로그램 북적북적입니다. 이번주에도 찾아온 저는 SBS 미래부 심영구 기자입니다. 


 "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에서 다 배웠다"


 "나처럼 좋은 남자도 없어"


 "남자로 살기 너무 힘들어"


 "내가 여자한테까지 무시당해야 돼?"


이 팟캐스트를 듣는 여러분이 한국에 살고 있다면 이런 말 하는 남자를 봤거나 접해봤거나 아니면 남자의 경우 자신이 직접 그런 말을 했거나.. 어떤 식으로든 경험한 적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흔하게 하는 말들이라는 거죠.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군대 다시 가라면 좋다고 갈 남자들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한편으론 군대를 찬양하고 2년여 군생활은 고난과 역경과 시련, 인내의 나날이었지만 이를 극복해낸 위대한 예비역.. 뭐 그런 걸까요, 쑥쓰럽지 않을까 싶은데 스스로에게 관대합니다.. 자신을 가장 좋은 남자라 하고.. 그러면서 남자로 사는 게 힘들다 투정부리고 .. 남자한테 무시당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여자한테까지 무시당하는 건 용납하기 힘들고... 


목소리로 짐작하셨듯이 저는 남자로 주욱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저도 한국 남자라는 정체성을 벗어날 순 없습니다만, 제가 봐도 이상합니다. 그 남자, 즉 한국 남자, 전부는 아니니 일부라고 하겠습니다.. 그 일부의 한국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요.


이상해진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탐구한 책을 들고 왔습니다. 공교롭게 저랑 동갑내기인 사회학자 오찬호씨의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입니다. 이 분도 한국 남자네요.


책 읽는 걸 흔쾌히 허락해준 출판사 동양북스에 감사드립니다.


------------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를 머리, 가슴, 어깨, 등, 이렇게 4개의 장으로 구성했는데요, 아까 읽은 문장들이 각 장의 소제목입니다. '머리' 장은 '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에서 다 배웠다'.. 이런 식으로요. 먼저 이상한 남자의 '머리'를 지배하는 혹은 짓누르는 큰 트라우마라고 할까요, '머리' 장 중에서 "군대 다녀오길 정말 잘했구나"를 읽습니다. 당연히 역설적인 의미입니다.



-낭독한 내용 요약: 대한민국은 곧 군대, 싫든 좋든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남자들은 사회생활에 여러모로 여자에 비해 유리, 군대 말년엔 군대 물 빼려고 노력하나 제대 해보면 군대의 소통방식대로 하는 모습 원해. 그러면 사회생활 잘한다는 칭찬도 들어. 예비역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 군대 있던 시절을 * 같은 시절로 인정하면서도 군 복무를 줄이자는 데는 반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렇게 창출됨. 남자들은 군대를 증오하는 만큼 옹호하게 됨. 


-책 속에서: "...군대에서 적응 잘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일상에도 무난히 적응할 수 있다. 그냥, '대한민국은 군대다'. 그러니 싫든 좋든 군대를 다녀와야하는 남자들은 사회생활이 여러모로 여자들에 비해 유리하다. 물론 이것은 남자 개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남자든 여자든) 이 같은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


## '개저씨'라는 인상적인 신조어가 있습니다. 개 + 아저씨인데요, 함부로 반말을 하고 사생활을 묻고 스킨십이나 성적 농담을 일삼고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이를 함부로 대하고 가부장적 생각을 강요하고.. 권력이나 지위, 나이를 근거로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일삼는 무개념 4-50대 남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개저씨'를 저자는 혁명의 단어라고 정의하고 분석합니다. 들어보시죠.


-낭독 내용 요약: 개 같은 아저씨를 개저씨라 표현하는 건 없었던 존재를 악의적으로 지어낸 게 아니라 원래 악랄한 것을 이제 발견했기 때문에 일종의 혁명. 똥을 이제야 똥이라 부른 셈.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은 약자를 향한 강자들의 낙인, 개저씨는 반면 오래 짓눌린 자들의 미세한 저항이 모인 이유 있는 반항. 자신이 개저씨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 행동을 조심하는 아저씨가 등장한다면 이는 언어의 가장 멋진 사회적 기능. 


-책 속에서: "...개저씨들은 '개 같은 행동'의 기준이 목소리 크기와 어휘 선택으로 결정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어떤 개든 개는 개다. 개저씨는 누구나 '존엄한 인간의 가치'를 보장받아야 하는 수평적 인간관계의 균형을 깨는 행동 그 자체로 판명된다... 어떤 개저씨들은 자신의 시대가 '불운'하다며 울상이다. 무슨 말인가. 오히려 행운 아닌가. 그나마 남은 여정에는 '자기 멋대로' 살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받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



## 땡땡녀, 엑스엑스녀, 뭐뭐 녀라고 이름 붙여진 사건들이 언젠가부터 크게 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언론 종사자들의 책임이 큽니다. 별 고민 없이 '00녀' 라고 쉽게 명명해왔으니까요. 이 사건들 상당수가 저도 그렇지만 저자가 보기엔 고약합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성별에 따라 달리 적용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데에 저도 크게 공감하고 반성했습니다.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성추행을 당하지' 라는 제목이 달린 글입니다.



낭독 내용 요약: 성추행 당한 여성의 옷차림을 문제삼는 풍토에 외국에서 화제가 된 내용. 땅콩버터 앞에 얌전히 앉아있는 개 사진을 올리고는 이 개가 원래는 땅콩버터에 환장하지만 얌전히 있는 이유는 주인이 "안 돼"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 개도 이렇게 인내심을 발휘할진대 한국남자들은? 정보화 사회의 장점은 과거 같으면 덮였을 사건이 여론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으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저지르는 여러 폭력이 대표적인 경우. 그런데 '인권'이라는 개념도 성별에 따라 달리 적용되고 있어 문제임.


-책 속에서: "...남자들은 이제 과거에 비해 훨씬 조심하면서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원래' 조심해야 하는 것은 '훨씬' 조심하는 것이 맞다. 성추행은 '하지 않는 것'이 답이지, 과거만큼 못 한다고 무슨 '행동에 제약'이 있는 것처럼 이해해선 안 된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면서도 '부연 설명'을 하는데 '남자들이 듣기에 기분 나쁨직한' 자기 취향 좀 말했다고, 또 공중도덕 하나 못 지켰다고 해서 '개인의 모든 것이 탈탈 털리는' 대상이 대부분 여자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최근 화제와 논란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자리했던 메갈리아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면서 흡연 문제를 거론하는 글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비흡연자로, 흡연 자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길담배는 극혐입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지 않는 행태를 보이는 흡연자들은 저자 표현 대로면 99.999%가 남성입니다. 왜 그럴까요. 



낭독 내용 요약: 성별에 따른 흡연의 불평등함만 봐도 양성이 객관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게 나타남. 이 때문에 여성의 흡연 풍토는 남성과 완전히 달라졌고 남성 흡연자는 길담배 등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하는 반면 여성 흡연자는 대개 그렇지 아니함. 여성 전용 흡연실의 등장은 흡연을 놓고 여성에게 온갖 눈치를 주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


책 속에서: "...'담배나 피우는 년'을 '담배나 피우는 놈'이라 미러링하면 어색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가. 그리고 이때쯤 되면 '출산을 하는 여자가 몸에 좋지 않은 담배를 멀리하는 건 당연하다'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꼭 등장한다. 어쩌란 말인가? 개인이 선택해야 할 생물학적 기능을 존재에 구속시켜 여자의 한평생을 재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뭐 '좋은 의도'였다고 치자. 그럼 왜 '정자'가 없이는 임신도 안 되는데 '건강한 정자' 타령은 하지 않을까...어떤 바보 남자들은 이를 '역차별'이라면서 왜 남성 전용 흡연실은 없느냐고 따진다. 정말이지 답이 없다. 넓은 '실외'가 다 너희들의 흡연실이 아니었던가.."



------------------


 저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만,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책 앞머리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본문에도 나옵니다.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로'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일들이 세상의 절반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여겼는데 이 책을 읽으니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야 라는 생각부터 버려야겠어요. 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한국 남자들에게 더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긴 시간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